어느 식당에 가든 어린 아이들을 쉽게 마주한다. 우리가 성인이 되서야 처음 맛봤던 파스타를 솜씨를 뽐내듯 포크와 스푼을 이용하여 돌돌 말거나, 스테이크를 음미하는 미취학아동들을 보면 새삼 놀랍다.
외식메뉴가 수없이 발달한 요즘이지만, 우리 어렸을 적은 어땠을까. 졸업식, 채육대회, 이사 등 가족 주요 행사에만 외식을 할 수 있었다. 메뉴도 무조건 짜장면. ‘우수상’이라도 받았다치면, 탕수육이 추가되곤 했었다.
요즘엔 중식도 좀 더 세련되게 바뀌었다. 삐그덕 삐그덕 거리던 낡은 철문에서 고급 자동문으로 바뀌고, ‘ㅇㅇ짬뽕’, ‘ㅇㅇ탕수육’ 등 메뉴도 고급스러워져 한 껏 품격이 높아졌다.
그러다, 우연히 오랜시간 운영해 온 듯 한 ‘유성반점’ 같은 중화요리집을 만나기라도 하면 그간의 맛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괜히 입맛이 돈다. 가정집을 개조한 듯한 식당에 가까워 질수록 센불에 웍을 쓰는 소리, 특유의 불맛이 코 끝을 자극시킨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격, 안 들어가 볼 수 없다.
매장 안으로 들어서면 맛있는 소리와 냄새가 더욱 진해진다. 주방 앞에는 단 4개의 테이블 밖에 없는데, 모두 맛에 감동했는지 고개를 접시에 밀착해서 오로지 먹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
바로 옆으로 가면 앉아서 먹을 수 있는 방 공간도 있는데, 그 곳 또한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손님들 사이로 반주를 즐기는 어르신들부터 맛집을 찾아다니는 미객, 부모님 손에 이끌려온 어린아이까지 고객층이 다양하다.
‘유성반점’은 두 분이서 영업한다. 아버님은 서빙 겸 배달 그리고 어머님이 주방에서 음식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자연스럽게 늦어질 수 밖에 없다. 점심시간에는 주방문을 열고 셀프로 주문을 해야 할 정도이다.
메뉴판을 보면 '잘하는 것만 내놓겠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겉이 화려한 요리는 쏙 빼고 짜장, 짬뽕, 우동, 국밥, 볶음밥, 탕수육 등 흔히 먹을 수 있는 식사메뉴들만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제대로 된 맛을 보기 위해 수 십분째 오매불망 기다려야 한다. 김치와 단무지라도 먼저 나오면 씹으면서 기다리기라도 할 것 같은데, 하염없이 물잔을 비우며 기다릴 수 밖에 없다. 혹시나 주문이 들어갔나하는 의구심에 다시 주방에 방문해도 순서를 기다리라는 응답뿐이니 기다림은 계속 된다.
30분이 지나고나서야 드디어 우리가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 요즘은 짬뽕과 볶음밥 들이 워낙 화려해졌는데, 이 곳은 알찬 내용물과 푸짐한 양 등 그때 그 시절 그대로 복원시켰다.
물로 달랠 수 없던 식욕이 짬뽕(5,000원)에 먼저 반응했다. 코 끝을 찌르는 익숙한 향, 길게 썬 오징어와 채소, 돼지고기 몇 점 올려 빨간 고추기름 묻은 면을 후루룩 들이켜다보면 뜨거운 것이 목구멍을 타고 배속까지 내려간다.
과분할 정도의 쫀득쫀득한 면발. 그리고 여타 짬뽕에 비해 국물 맛은 자극적이지도 않고, 강하지도 않다. 그러나 한술 떴을 때, 국물의 깊이는 어마무시하다.
20분 이상 멀뚱멀뚱 테이블만 바라봤던 기다림이 눈 놓듯 사라진다. 이정도면 기다림의 미학이 있는 짬뽕이지 않을 까 싶다. 뱃속이 얼큰하게 꽉 들어찬 포만감, ‘이걸로 됐다’.
다음은 유성반점의 인기메뉴인 볶음밥(5,000원)이다. 고슬고슬한 밥에 좌르륵~ 기름을 코팅 시켜놓은 빛깔이 저절로 숟가락을 부른다.
보기 좋게 쌓아올리진 않았지만 언뜻보기에도 푸짐한 양을 자랑한다. 거기에 무심학게 달척~ 올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반숙으로 익힌 노른자를 수저로 톡 터트려 볶음밥과 함께 먹으면 풍미가 좋아지는 것은 볶음밥 좀 먹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거기에 아까 맛 본 짬뽕 국물에 적혀 먹으면 더 좋다.
짬짜면보다 더욱 최상의 조합을 선택하라면 나는 당연 짬뽕과 볶음밥이다. 유성반점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피날레는 이 탕수육(小 15,000원, 中 18,000원)이다. 겉보이게는 일반적인 탕수육 같지만 그 맛을 봤을 때, 충격적이라는 표현을 써도 아깝지 않은 맛이다.
거칠어 보이는 외관 하지만 그 속은 누구보다도 부드러운 츤데레 같은 탕수육이다. 보통의 쫀득함의 이상이라 '젤리 탕수육'이라 명칭을 붙여도 괜찮을 것 같다.
엄청난 고기의 함량과 질 좋은 고기가 그 맛의 비밀이다. 한입에 먹기 딱 좋은 크기인 탕수육에 9할 이상이 고기이다. 튀김옷만 먹어왔던 그런 탕수육과는 비교자체를 해서는 안된다. 이런 탕수육을 맛볼 수 있는 것이 굉장한 경험이 되었다.
탕수육 자체가 맛있기 때문에 소스를 찍어먹지 않아도 맛있다. 그러나 탕수육소스 또한 다른 곳과 다르다. 복분자 또는 딸기가 함유된 소스라 인위적이지 않고 은은한 단맛이 매력적이다. 역시 소스까지 맛있어야 탕수육 잘하는 집이다.
세월이 흘러도 특별한 날에는 항상 생각나는 것이 짬뽕, 볶음밥, 탕수육이다. 그런데 유성반점 같은 퀄리티라면 오늘 먹으면 내일 또 생각날 맛이다. 진정한 맛을 위해 요행을 부리지 않는 사장님 두 분의 노고라면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지 않다. 흔하디 흔한게 중국집이라지만 '유성반점'은 일부러라도 찾아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