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노소 누구나,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고, 비교적 값도 싸다는 이유로 주꾸미를 찾곤 한다. 그런데 대부분은 냉동 주꾸미이고 몸통은 텅텅 비었다. 그러므로 매운양념으로 조리해서 쫄깃한 식감과 매운 양념 맛으로 먹는다.
그러나 한 끼를 먹어도 진정한 맛을 아는 자들은 꽃들이 만개한 지금을 오매불망 기다려왔다. 겨울철 약간 깊은 바다에서 숨어 있다가 동백꽃 필 무렵 알을 품는 제철 주꾸미를 만나기 위해서다.
제철해산물을 취급하는 횟집에 가면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주꾸미이다. 하지만 수조관에서 팔딱팔딱 헤엄치는 주꾸미는 물론이고, 주차하기도 쉽고, 갖가지 곁들이 음식도 푸짐한 곳을 찾는다면 용두동에 있는 ‘한빛수산’이 제격이다.
[ 인근 교회주차장에 주차 가능 ]
깔끔하게 정돈 된 식당은 꽤 넓어서 주꾸미 철을 맞아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희희낙락 잔을 부딪치며 모임을 갖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메뉴판을 보라. 이 정도는 되어야 횟집의 메뉴판이다. 여러 종류의 활어와 해산물 조화 속에서 초밥, 탕, 돈가스 같은 식사메뉴와 오후 3시까지 판매하는 정식이 확연하게 눈에 띄긴 한다.
그러나 오늘은 목적 달성을 위해 매장 곳곳에 붙어 있는 간이메뉴판에서 주꾸미요리를 선택해본다. 주꾸미요리는 숙회, 무침, 샤브샤브 등 3가지 중에 선택할 수 있다.
주꾸미 샤브샤브를 주문하면 곁들이 음식들이 속속 제공된다. 사실 횟집의 가장 큰 장점은 ‘스끼다시’라 불리는 곁들이 음식들이다.
이것을 즐기러 횟집을 방문 한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인데, ‘한빛수산’은 두 차례 나눠서 제공된다. 죽 또는 수프로 속을 데워주고 번데기, 완두콩, 샐러드로 입가심 하고 있으면 머지않아 여러 음식들이 보강된다.
스위트콘, 미역국, 가오리찜, 알밥 등이 나오니 제법 상차림이 완성된다. 꼬막, 소라, 멍게 등의 해물모듬도 제공되니 음주파들은 여기에 소주 한잔 할 수 있어서 더더욱 만족스럽겠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해물을 즐기다 보면, 주꾸미 샤브샤브의 기본이 되는 육수가 나온다. 육수 자체의 퀄리티가 좋다.
맹물이 아닌 된장 약간 푼 물에 시원한 맛을 가미해주는 바지락과 무를 첨가했다. 육수의 첫맛은 은은하지만, 원재료의 본연의 맛을 극대화해주기에 충분하다.
육수가 살짝 끓을 쯤, 오늘의 주인공을 대면한다. 주꾸미볶음에 들어간 주꾸미와는 크기부터 비교가 안 된다. 크기뿐 아니라, 신선함을 증명하듯 자회색을 띄고 윤기가 나고 탱글탱글하다.
수조관에서 막 건져온 주꾸미이기 때문에 수저로 살포시 누르면 곧바로 꿈틀꿈틀 낸다. 그 수저에 빨판이 달라붙어 딸려온다. 그만큼 싱싱하다.
샤브샤브의 조리방법은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다. 익히는데 시간이 소요되는 몸통 부터 넣고 한동안 계속 익혀주고 다리는 바로바로 살짝씩 데쳐만 주면 된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린 주꾸미 다리를 넣으면서 미나리, 시금치, 팽이버섯을 함께 넣어준다. 잘 데친 주꾸미를 미나리와 함께 싸서 먹는 것도 주꾸미의 맛을 살릴 방법이다.
미나리의 향긋한 향이 주꾸미의 비린 맛을 잡아주는 동시에 쫄깃한 맛과 어우러져 맛이 좋게 해준다. 이 채소들은 부족하면 더 채워준다는 것도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
탱글탱글하게 잘 익은 주꾸미 맛은? 마치 시속 157km로 몸쪽 직구처럼 꽉 찬 맛이다. 씹으면 씹을수록 보들보들한 것이 먹은 지 며칠이 지나도 지금도 감동의 여운을 남겨준다.
취향에 따라 간장이나 초장을 찍어도 되고 미나리나 시금치에 돌돌 싸먹어도 된다. 함께 즐기는 양념이나 채소에 따라 각각 다른 맛을 내주니 질리지 않게 끝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쉼 없이 주꾸미를 데치다 보니 어느새 먹물과 국물이 합쳐져 검게 변했다. 먹기 좋지 않은 비주얼일지 몰라도 그 국물의 맛이 진국이다. 바지락과 무에서 우러난 시원함에 먹물의 고소함까지 겸비했다. 해장 국물로도 손색이 없다.
우리가 흔히 머리라고 부르는 이 부위는 몸통이다. 샤브샤브 국물에 몸통을 오랫동안 익힌 후 꺼내서 2등분으로 잘라 보니, 이 안에는 알과 먹물 그리고 내장이 들어있다. 봄 주꾸미를 최고로 치는 이유가 바로 이 알 때문이다.
밥알 같은 알이 꽉 차있다. 짭조름한 먹물과 버터같이 고소한 내장, 찹쌀밥 같은 알의 조화는 유명 양식 쉐프가 만들어내는 먹물리조토나 빠에야도 쭈꾸미 몸통에 한참 못 미친다.
주꾸미 샤브샤브를 다 먹을 후에는 먹물이 새까맣게 풀어져 짭조름한 국물에 라면이나 칼국수를 넣어 먹어야 별미다.
‘한빛수산’에서는 우동사리를 무료로 제공해준다. 샤브샤브 국물에 우동면을 야물게 익혀낸다. 일반적인 우동면이지만 고급스러운 후식으로 변모한다. 이것이 바로 주꾸미의 매직이다.
역시 언제 누구와 먹어도 맛이 있는 주꾸미지만 알이 꽉 찬 봄 주꾸미의 클라스는 다르다. 봄 주꾸미가 달기로는 낙지보다 나으며 쫀득한 식감은 문어에 견줄 만하다. 더불어 고소한 알배기 맛은 봄, 바로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