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여, 고민의 시간이 다가왔다. 올해 크리스마스 거사는 어디서 개최할 것인가? 그런데 말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파스타와 뷔페를 성탄절에 섭취해야 하는가. 그런 건 어린 새싹 같은 신상 커플에게 양보하자. 관록의 커플들은 뜨거운 데이트를 원한다.
여친의 흡족한 입꼬리를 목도할 수 있도록 사랑방이 먼저 나섰다. (이제는 떠나간)브랫 필도 만족했던 유스퀘어로 출동했다. 그릴 위에서 불타는 타이 요리와 함께 말이다.
오늘의 방문지, 그릴타이는 유스퀘어 2층으로 총총 오르면 발견할 수 있다. 오픈 한 지 이제 갓 한 달 된 뜨끈한 곳이다.
‘식사비를 지불하면 주차권은 드릴게’ 하는 곳이니 걱정 말고 차를 가져 오시라. 외관에서부터 심상찮은 불의 기운이 느껴지므로 침 한번 꼴깍 삼키고 입장하면 된다.
불로 시작해서 불로 끝나는 인테리어다. 심지어 안 쪽 주방에선 레알 불길이 천장에까지 치솟고 있다. 소화기 안전핀 뽑아야 하는 게 아닌지 두리번거리는 와중에 주방직원은 유유히 불길을 감상하고 있다.
이 마당에 음악은 저음 깊은 우퍼를 타고 연약한 내 골수의 심금을 울린다.
뉴욕 유학생이 뉴요커가 되어 태국 식당을 창업했다는 스토리가 적혀 있는 메뉴판이다. 묘한 사연이 있는 분 같은데 부러운 마음은 금할 길 없다. 여튼 메뉴는 퓨전 태국요리가 주다.
팟타이(누들), 스테이크, 라이스 요리, 샐러드 등이 있고 세트 메뉴도 존재하니 주의 깊게 보시면 되겠다. 본인은 나시고랭, 프라임스테이크, 씨푸드 팟타이를 골랐다.
누들요리인 팟타이는 면발 굵기와 매운 정도를 선택할 수 있다. 자고로 뭐든 줄을 설 땐 중간을 택하라고 군대에서 배웠다. 면 굵기와 매운 정도 모두 중간을 택했다.
또 하나, 팟타이를 선택하면 같이 볶을 야채를 직접 고를 수 있다. 접시를 손에 쥔 뒤 알바님의 에스코트를 받아 주방 앞으로 다가가 봤다. 양배추, 당근, 양파, 숙주나물, 목이버섯과 새송이버섯까지 있다.
이걸 접시에 먹을 만큼 담아 주방 직원님께 제출하면 된다. 그분은 그릴 위에서 작두를 타듯 현란한 손놀림을 보이시니 아이처럼 잠시 감상해도 좋겠다.
그렇게 우리의 첫 번째 먹잇감 씨푸드 팟타이(10,500원)이 등장했다. 굴소스에 흠뻑 취하고 불의 그윽한 향 머금은 쌀국수면과 해물, 그리고 아까 열심히 골랐던 야채가 제대로 볶아져 나왔다.
해물은 종류도 다양하다. 두꺼운 오징어와 조개, 새우가 포크를 든 난폭한 포식자를 반긴다. 쌀국수면은 탱탱하면서도 쫄깃하니 씹을수록 단맛이 올라온다.
절묘하게 볶아져 나온 야채의 맛도 빼먹을 수 없다. 쌀국수면과 해산물 사이에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는다. 맵지 않으면서도 강한 향은 입안의 내용물을 목구멍으로 토스하기도 전에 또 집어넣게 만드는 중독성을 내뿜는다.
두 번째 먹잇감은 일종의 볶음밥인 나시고랭(10,500원)이다. 개인적으론 예전 발리로 여행 갔을 때 한 번 먹고 그 맛에 충격을 받았던 요리이기도 하다.
본디 인도네시아의 서민 음식이지만 CNN 선정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2등에도 선정됐다고 한다.
다만 아쉬운 건 본토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는 그 맛을 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역시, 그릴타이의 나시고랭도 한국의 맛이 가미된 퓨전식에 가까웠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이 있다. 바로 무척 맛있다는 것!
약간은 고추장맛도 나는 듯, 또 다른 혀끝에선 칠리소스맛도 느껴지는 듯하다. 밥 위에 놓인 계란반숙을 섞으면 살짝 걸쭉해지면서 진해지니 맛이 새로워지기도 한다. 밥 사이로 숨은 닭고기도 놓치지 말고 동행인에 뺏기지 말고 꼭 섭취하자.
프라임 스테이크(14,000원). 살치살 스테이크에 태국식 가니쉬를 포갠 정열의 향이 마지막으로 등장했다. 지글지글 타오르는 스테이크가 진심으로 사랑스럽다.
독자들의 침샘이 유성온천 터지듯 솟아오를 영상을 준비해봤다. 아껴놨다가 꼭 배고픔이 극에 달할 시간에 플레이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고기는 적당이 익혀 부드러운데다 그 속은 자극적이게도 선홍빛이다. 동봉된 칠리소스는 꼭 찍어먹어 보자. 일반적인 칠리소스와는 다른 특이한 향이 나는데 스테이크의 맛을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것 같다.
특히 다양한 가니쉬와 함께 하면 하나의 스테이크로 5가지 이상의 맛을 내는 효과가 있다. 파인애플, 버섯, 바나나와 시금치 등 요리조리 조합해 먹어보자. 그릴타이의 스테이크는 (스테이크 치고)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매우 훌륭한 맛을 선사한다.
말도 안 하고 먹다가 동행인의 어이없어 하는 눈초리를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릴타이의 강렬한 불맛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본인의 혀와 마음에 쉬이 꺼지지 않는 방화를 저질렀다.
여전히 주방에선 불쇼가 벌어지고 있고, 강렬한 음악소리와 함께 이 밤의 열정도 더해간다. 이것 참, 오늘은 여간해선 꺼지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