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캐스트
이름보다 맛이 강렬한 카레집
시바카레
금남로
2016.10.20 조회수 221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이 속담처럼 누군가에게 쉬이 기억되는 건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기억되는 이름은 들었을 때 무언가 그림이 그려져야 할 뿐만 아니라, 색감 자체가 강렬하다.


시바카레는 강렬하다. 모든 것의 시작을 뜻하는 육두문자일까? 세상의 파괴를 맡고 있다는 힌두교 신일까? 쉽게 잊을 수 없는 이 이름의 주인공은, 사실 강아지다. 아, 허탈해서 못 잊겠다.



비오는 동명동의 일요일. 식당이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은 건물 1층 한 구석에, 오늘의 강아지가 있다. 눈에 띄는 간판도 없다. 김영란법 때문인지 개업축하 화환도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 벌써 줄을 선다. 지금 시간은, 오전 11시 30분이다.



내부는 단출하지만 소박하진 않다. 정제되어 있다는 표현이 옳겠다. 최소화된 사물들이 유기적으로 ‘바쁘게’ 기능한다. 그 와중에 오직 하나의 생명체만 유유자적이다.



이 친구의 이름은 ‘카레’다. 그리고 그를 규정하는 종(種)개념은 ‘시바’라고 한다. 원산지는 일본으로, 밝고 명랑하지만 일단 화가 나면 앞뒤 안 가리고 돌진한단다.


그런데 이 녀석은 만사가 귀찮다. 카메라를 비추면 고개를 홱 돌려 본인이 비싼 몸임을 강변한다. 혹여 심기를 건드려 화를 부를까봐 카메라 대신 먹이를 들이밀어야 했다.



기다리는 줄이 길어 메뉴를 먼저 주문했다. 음식은 크게 두 가지다. 새우크림카레와 닭가슴살토마토카레. 그리고 짬짜면처럼 두 카레를 반반 섞은 ‘시바카레’가 있다.


결국 시바카레(9,000원)새우크림카레(8,000원), 복숭아사이다가 우리의 간택을 받았다.



일본 태생의 복숭아맛 사이다가 먼저 우리 품으로 들어왔다. 아기자기한 모양새에서부터 특유의 왜색이 묻어나온다. 맛은 처음 먹어보지만 예상했던 대로라는 게 포인트다.


강하지 않은 탄산과 절제를 아는 복숭아향. 카레와 같이 먹어야 하므로 일단 뚜껑을 덮어둔다.



드디어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창가 쪽 손님 음식 나왔습니다!” 내 카레다. 재빨리 달려가 둥그런 그릇이 담긴 트레이를 받아들었다.



강아지 ‘카레’가 카레 위를 밟고 갔는지, 카레에 그 친구 발자국 모양의 밥이 선명하다. 노란 카레를 장식하는 빨간 토마토, 녹색 깍지콩의 쨍한 색감에 눈이 즐겁다.



센스 있으면서 정갈해 이대로 두고픈 플레이팅이지만, 결국 먹기 위해선 카레와 밥을 사정없이 섞어야 한다. 섞으면서 발견한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카레가 아주 묽다.


더 특이한 점이 있다. 묽은데 꽉 차있다. 확실한 카레의 향이 느껴진다. 그 와중에 보통 카레보다 훨씬 부드럽다. 고소한 크림 맛은 새우와 찰떡궁합이다. 신묘할 지경이다.


이제 크림카레와 토마토카레를 반반 섞으면 어떤 맛이 날까? 낮은 점도를 가진 카레의 장점이 여기서 드러난다.


각기 다른 맛의 두 카레가 자연스럽게 부둥켜안고 몸을 섞기 시작한다. 서로를 무척이나 그리워한 듯 하나가 된 카레는 전혀 새로운 화합물로 다시 태어난다.



토마토소스의 매콤새콤한 맛이, 크림소스의 부드러운 맛에 중화된다. 각자의 풍미를 어필할 수 있게 최소화된 재료들 덕분에 부담스럽지 않고 편안하다.



느끼하지도 않고, 맵지도 않은, 딱 적당하면서도 새로운 맛. 인도 카레도 아닌, 일본 카레도 아닌 시바카레의 매력은 바로 이것이었다.


가게이름의 뜻을 알게 된 처음엔 허탈함 때문에, 그리고 카레 한 접시를 비우고 난 후엔 그 맛 때문에 잊지 못할 가게. 오늘 카레 한번 잘 먹었다. 아, 나가기 전에 저 시바견이랑 사진은 꼭 찍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