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캐스트
절제미가 매력적인 핏짜
피아짜
금남로
2016.09.29 조회수 342


문화전당 하늘마당 잔디밭에 앉아 가을이 왔음을 느낀다. 하늘은 아련한 파스텔톤이며 잔디는 눈부시게 빛난다. 가을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는지 10여분 되었을까. 묵직한 치즈향이 코를 뚫고 마음까지 침투한다.



동작 빠른 이들은 돗자리 위에 모여 피자를 삼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나니 매너모드로 해 놓은 복부가 진도 7의 알람으로 미친 듯이 울려된다. 잔디밭에서 고개를 돌렸다. 파란색 피잣집이 보인다. 치즈향의 근원이었다.



하늘마당에서 길만 건너면 바로 닿는 피자 가게의 이름은 ‘Piazza'.


문 앞의 조그만 칠판엔 ’돗자리를 빌려드립니다‘라고 쓰여 있다. 잔디 위 돗자리 피자파티의 출처가 여기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갑자기 계단이 나온다. 1층이 있긴 한데 주방이다. 홀은 따스한 색감의 나무계단을 오르면 등장한다. 배고픔에 방전된 그대라도 조금만 힘을 내자. 2층 유리문에 적힌 ‘전망 좋은 곳’이란 문구가 허기를 기대감으로 채워준다.


내부는 크고, 여유롭다. 아니, ‘편안하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관람객은 적지만 인상적인 작품이 걸린 전시회장처럼, 가을 오후와 어울리는 분위기에 일주일의 긴장이 풀린다.


무엇보다 창밖으로 보이는 문화전당의 풍경이 좋다. 전망 좋은 곳에 잘 왔다.



식당 한 구석에 유난히 눈길을 끄는 것들이 있었다. 엄청난 스케일의 레고 컬렉션이다. 나 같은 꾸러기들은 이런 작품에 눈을 떼지 못한다. 작품 좋은 곳에 아주 잘 왔다.



마트 장난감 코너에서 정신을 잃은 아이를 잡아오듯, 동행인의 손이 내 멱살을 향해 다가왔다.


빳빳한 종이에 적힌 수많은 ‘핏짜’의 종류가 인상적이다. 파스타와 샐러드 메뉴도 많다. 고심 끝에 골랐다. 이름부터 핫한 ‘디아볼라’ 핏짜와, ‘페스토 디 바질리코’ 파스타, 그리고 ‘삐아짜 샐러드’다.



삐아짜는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고 모든 소스를 주방에서 직접 만든다. 슬로우 푸드를 지향한단다. 느려도 지루할 틈이 없다. 주문과 동시에 핏짜를 닮은 식전빵이 날아들기 때문.


빵은 인도요리의 난이 떠오르는 맛이다. 다소 토속적인 비유를 들자면 공갈빵 같기도.



여기에 동봉된 접시 위의 가루 삼형제(치즈, 레드페퍼, 소금)를 찍어 먹으면 마법을 부린 듯 맛이 변한다. 막 묻혀 먹는 게 좋다. 그럴수록 자극적이다.



가장 먼저 샐러드가 도착했다. 어린잎 채소와 토마토 위에 고급 모짜렐라 치즈가 한 덩이 턱 놓였다. 모짜렐라 위에 발라져 있는 게 페스토 소스다.(이끼 아님)



탱글탱글 젤리 같은 감촉의 모짜렐라 치즈를 나이프로 조심스레 자른다. 치즈조각은 토마토와 몸을 부대끼게 되고, 싱그러운 채소와 함께 나의 내면으로 들어온다.



토마토로 상큼한 첫맛이 지나가면 입안 가득 치즈 향이 찾아온다. 절제한 듯하지만 맛에 자신감이 넘친다. 맛은 마지막까지 미묘한 균형을 유지한다.



직접 만든 바질 페스토 소스를 입에 넣은 자, 싱그러운 초원을 뒹구는 기분을 맛볼지니!


페스토바질을 빻아서 올리브유, 치즈, 잣, 마늘 등을 넣고 갈아준 소스다. 그냥 먹어도 향긋한 바질에 올리브유를 곁들이니 이보다 더 짙은 풍미가 있을까?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고는 하나 이곳의 바질 페스토 파스타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짙은 풍미는 감각기관 곳곳에 스며든다. 식당을 나와도 혀끝에서 그 맛이 맴돌 만큼.



드디어 디아볼라 핏짜가 모습을 드러낸다. ‘널 차지해 버리겠다’는 듯, 섹시한 여인을 닮은 빨강이다.


매콤한 초리소마저 붉은 유혹일진대, 무심하게 흩뿌린 올리브까지 매력적인 이 핏짜 앞에 목구멍을 닫을 자 그 누구인가.



얇은 핏짜는 장점이 많다. 토핑을 최소화한 대신 그 고유의 맛 하나하나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절제를 아는 도우는 바스락, 잠자던 미각을 깨운다. 영상으로 느껴보시길.



마지막으로 디아볼라 설명 하나 더. 이 핏짜는 매울 것 같으나 맵지 않다. 대신 토마토소스는 새콤한 맛을 내고 초리소의 향은 매혹적이다. 이런 악마의 유혹이라면 한번쯤 넘어가 줘도 괜찮겠다.



모든 요리를 깨끗이 비운 후, 지난 날 내가 먹었던 ‘핏짜’ 아닌 ‘피자’들을 떠올려 보았다. 주사위를 던져 먹는 과한 피자, 오두막에서 먹는 두꺼운 피자와는 달랐다. 절제를 아는 핏짜는 단출해서 적나라하다.


숨길 수 없기에 더욱 맛있어야 한다. 여기 삐아짜의 요리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