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맛집

야들야들, 바삭바삭. 고소함 잔뜩 머금은 커틀렛을 사박사박 썰어낸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침이 고인다. 수학의 정석처럼 아득하게 두툼한 고기가 너로구나 싶다. 이제 정석대로 곱게 빻아 만든 소스에 퐁당! 그렇게 달콤한 설렘 묻힌 채로 내 입에 풍덩!

상상만 해도 행복해지는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돈가스다. 이름도 널리 만인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돈까스란다. 한양에선 이미 맛난 돈가스의 대명사가 됐고, 광주에도 수완점에 이어 상무점까지 세를 넓혔다. 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우리가 잠입한 곳은 얼마 전 오픈한 상무점. 우리은행 뒤편 골목, 영효빌딩 1층이 타깃지점이다. 주차는 바로 위 주차장에 점심은 1시간, 저녁 2시간까지 무료니 굳이 불법주차로 이웃을 노엽게 하지 말자.

아직 광이 살아있는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잠시 주변을 서성이게 만들 공간이 나타난다. 프랜차이즈의 자신감이 담긴 대기실이 그것. 기다림을 미학의 한 분야로 끌어들인 X배너 옆으로 핸드폰 주유소, 세면대까지 놓였다.

아름다운 기다림의 실천은 어렵지 않다. 일단 대기자 명단에 등록한다. 직원이 내 이름을 불러 주기 전 나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는 그에게로 가서 돈가스 낚는 어부가 된다.

내부는 무척 넓다. 공간에 비해 테이블 수가 적어 광활하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덕분에 옆 테이블 언니들의 지인 디스랩, 오래된 연인의 심드렁한 대화를 BGM으로 들을 필요 없어 좋다. 은은한 조명은 곧 눈앞에 놓일 돈가스에 오롯이 집중하게끔 도와줄 것이다.

돈가스 전문점인 만큼 돈가스와 관련한 일반적인 메뉴들이 다 있다. 옛날식 왕돈까스부터 일본식 로스까스, 생선까스, 롤까스, 거기에 볶음우동과 파스타, 볶음밥까지.

충실한 기본기를 맛보고 싶은 우리는 왕돈까스, 정통 일본식 로스까스, 해물볶음우동(순한맛)을 택했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벽에 걸린 글귀들을 흘깃흘깃 훑어본다. 자연치즈와 올리브유를 사용하고, 국내산 1등급 돼지를 사용한다고 적혀있다. 기특하긴 한데, 그럼 상대적으로 다른 식당들은 그렇지 않은 곳이 많은 가 싶어 한편으론 씁쓸하다.

주문한 메뉴들이 명절 귀성길 자식들처럼 속속 도착한다. 먼저 모습을 내보인 것은 왕돈까스. 처음 그 모습을 본 나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크기가 대륙의 기상을 뽐내는 듯했기 때문이다.

광활한 대지를 가르는 데만 한참이다. 유비, 관우, 장비 천하의 호걸들이 돈가스 위를 누비며 땅따먹기를 하는 모습이 연상되는 이유는 뭘까?

잡념은 접어두고 사각사각 설레는 칼질 소리와 반들반들 윤기 나는 소스가 담긴 영상에 집중해보시길. 침샘이 고장나도 책임은 못 진다.

고소한 기름향 잔뜩 빨아들인 튀김옷이 살아있는 듯하다. 리듬에 따라 큼직하게 잘라 한입 넣어본다. 첫 번째로 혀에 닿은 새콤달콤한 소스, 두 번째로 어금니와 만나 터져버린 재회의 눈물 같은 황홀한 육즙, 마지막으로 목넘김과 함께 찾아오는 돼지고기의 풍만함.

자연스레 나이프는 도돌이표처럼 다시 커틀렛으로 향한다.

다음은 하루 30인만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정통 일식 로스까스 차례다. 우선 급한 마음을 진정시키려 절구통 속 방망이에 손을 뻗는다.

깨를 빻는 건 자신 있는 나는 장인정신으로 소스를 제조한 후 공략 대상을 지긋이 바라본다.

확실히 왕돈까스와는 튀김옷의 질감부터 고기의 두께까지 참 많이 다르다. 하지만 앞서 왕돈까스에서 느꼈던 맛의 기품은 그대로 유지한다. 튀김옷의 날이 서 있는 듯하지만 신기하게 부드럽다!

사이드 반찬으로 나오는 샐러드와 단무지는 돈가스의 느끼함을 잡는 역할에 충실하다. 왕돈까스에는 스프를 주는 기특함도 잊지 않는다.

해물볶음우동은 돈가스집에서 발견한 훌륭한 식스맨이다. 우선 면발의 굵기와 삶은 정도가 기막히게 적절하다. 여기에 다소 과하다 싶은 굴소스향이 어우러지는데, 그 과함이 묘하게 싫지 않다.

무엇보다 풍부한 재료가 요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큼지막한 새우, 홍합, 양배추, 오징어가 미인대회처럼 서로의 미모를 뽐낸다. 돈가스가 아무리 엄청난 크기의 위용을 자랑해도 볶음우동은 희한하게 다 먹게 되니, 여유가 있다면 꼭 주문해 보시라.

솔직히 말하면 돈가스를 남겼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다. 먹어도, 먹어도 끝이 보이지 않아서였다. 한 해 음식물쓰레기 처리비용 8조원이 무한대가 되어 머릿속을 맴돌 때, 셀프바가 보였다. 남은 돈가스를 직접 포장해갈 수 있게끔 박스와 비닐봉지가 있다.

반찬 한 조각이 아쉬운 자취인들에겐 은혜로운 정책이다. 나는 내일 먹을 일용한 양식과 만족스런 포만감을 주섬주섬 포장해 그렇게 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