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날은 가네 무심히도. 머물 수 없던 여름날이 흘러가고 있다. 제대로 된 몸보신도 못한 채 폭염으로 허덕이는 요즘. 때를 놓친 삼계탕 대신 좀 더 다른 닭요리가 필요했다. 하지만 쉬이 떠오르진 않는다.
이럴 때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가 가만히 자기 배에 귀 기울이던 게 생각났다. 철저히 본능적인 배는, 곧 결론을 내려준다. 호오?! 자극적인 닭요리가 먹고 싶니? 그럼 넌 지금 닭갈비가 당기는 거야!
상무지구 메가박스 앞 골목은 언제나 젊은이들로 북적댄다. 차와 사람을 요리조리 피해 걷다 보면 오늘의 방문지, <조소영 닭갈비>를 발견할 수 있다. 주차는 메가박스 주차장에 무료로 가능하니 걱정하지 말자. ‘닭갈비’하면 떠오르는 유명 프랜차이즈와는 외부 분위기부터 많이 다르다. 차분하고, 정적이다.
때마침 내리던 소나기를 피해 서둘러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석이 반, 좌식석이 반이다. 등받이가 있는 좌식석이 앉아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보는 나 좀 우아한 것 같다. 분위기에 취해 닭내음에 취해 잠시 춘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던 지난날을 회상해본다.
그런 나에게 동행인은 말없이 수저통을 들이밀었다. 수저 놓으라는 건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수저통에 메뉴가 붙어 있다. 닭갈비 메뉴는 다양하다. 쭈꾸미와 삼겹살 닭갈비도 있으니 육해공이 다 모인 셈. 사리 종류도 가지각색이니 고르는 데만 한참이다.
제 아무리 쭈꾸미와 삼겹살이 손짓해도 나의 선택은 치즈닭갈비(1인분 12,000원)였다. 무려 임실치즈를 사용한단다. 거기에 라면사리(2,000원)를 추가하니 배트맨에 로빈과 캣우먼이 따라 붙은 완전체가 됐다.
이윽고 알바님의 분주한 손길 속에 기본찬이 차려졌다. 그 중 눈길을 뺏는 것은 닭죽이다. 공복으로 아우성치는 위장을 달래기에 이것만큼 좋은 게 있으랴! 탁월한 에피타이저다. 한 입 후룩~ 넣으니 적당한 간이 아드레날린을 분출시킨다. 아, 좋다.
보통의 닭갈비 프랜차이즈는 기본찬이 셀프다. 고로 막내들은 참 피곤해지는데 이곳은 직접 알바님이 가져다 주신다. 감사하다. 종류도 다양하다. 오이냉국, 쌈무, 상추, 옥수수샐러드, 김치 등!
참고로 오이냉국의 맛이 무척 시원하다. 한 여름 농활을 마치고 했던 등목 같다.
닭죽을 채 비우기도 전, 통아저씨 두 명은 너끈히 들어갈 만한 빅그릇이 등장했다. 속에 든 재료가 참 많기도 많다.
선홍빛 양념의 두꺼운 닭이 가운데 똭, 그 주위로 양배추, 팽이버섯, 깻잎, 고구마, 떡 등등! 여기에 치즈와 라면 사리가 투입 대기 중이다. 좋은 전력이다.
이쯤 해서 닭이 익어가는 영상을 유포해본다. 참고로 조리는 알바님께서 다 해주신다. 내 역할은 너무 눌러 붙지 않도록 한 번씩 스윽 저어주는 것과, 이 영상으로 여러분의 뱃속 심기를 건드리는 게 다다.
자, 어느 정도 익었으면 이제 라면과 치즈를 투하해야지! 이 현기증 나는 기다림을 견딜 줄 알아야 훌륭한 어른이 된다. 그렇게 완성된 닭갈비를 보시라! 보기만 해도 행복해진다.
이제 닭갈비를 상추와 쌈무에 고이 접어 나빌레라. 큼지막한 고기가 입안을 가득 채우니 포만감이 아주 좋다. 임실치즈는 그 특유의 쫀쫀함으로 요리에 생기를 더한다. 양념 꼬옥 품은 라면사리는 입 안에서 발랄하게 춤추기 시작한다.
적당한 단맛과 살짝 매운 양념맛이 인상적이다. 사람에 따라 조금 맵다고 느낄 순 있겠다. 한 입 넣으면 불을 뿜는 정도는 아니나 오이냉국이 자주 그리운 정도? 메뉴 중에 매운맛 닭갈비도 있는데, 이건 얼마나 강렬할까?
푸짐한 닭갈비와 넉넉한 사리에 배가 부르다고 볶음밥을 빼먹으면 닭갈비를 먹은 게 아니지. 이왕 시키기로 했으니 '비빔공기'말고 특별히 '날치알 비빔공기(3,000원)'를 주문해본다.
콩나물, 상추, 김가루 그리고 날치알이 어우러진 겉모양은 색다르지 않다. 배도 부르던 차, 기대 없이 한 숟갈 입에 넣는데...
날치알이 살아 움직인다! 닭갈비가 약간의 매콤함으로 입맛을 돋워 주었다면 비빔공기는 고소한 맛에 톡톡 튀는 날치알의 식감으로 깔끔한 마무리를 책임진다.
두툼한 닭고기와 절제를 지킨 양념. 푸짐한 양배추와 각종 재료들이 어우러진, 좋은 식사였다. 복날은 지나갔지만 닭이 멸종한 건 아니다. 언제든 우리 곁에 있는 닭요리의 종류는 다양하기도 하다.
폭염 속 몸보신을 놓쳐 아쉬운 그대라면, 색다른 닭갈비로 위로 받아 봄이 어떠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