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고급진 레스토랑을 다니며 화려한 음식을 즐기고, 바다를 통째로 가져온듯한 신선한 일식요리를 즐기다가도 우연히 들른 밥집에서 흰쌀밥에 김치 한 점에 벅찬 감동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는 내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만든 엄마표밥상처럼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직한 재료와 레시피를 사용한 ‘정직한 맛’은 한식, 양식, 일식 가리지 않고 통할 것이다.
오늘은 첫째도 정직, 둘째도 정직이라는 철학을 가진 식당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죽했으면 식당이름도 HONEST(정직)6T이다.
이 레스토랑은 양림동 초입에 위치한다. 근방에서 가장 눈에 띄게 세련된 식당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별 다를 것 없는 벽돌식 구조에 네이비색 페인트만 구석구석 잘 발라도 이 곳처럼 멋들어진다.
매장 안을 들어가기 전 테라스 공간이 먼저 눈길을 끈다. 자갈을 깐 테라스에는 잎사귀가 푸르른 화분들과 테이블의자를 배치했다. 혹여나 집에 이만한 공간이 있다면 이렇게 꾸미고 싶다.
테라스 공간은 서늘해진다면 웨이팅 공간으로 활용가능하고 포토존도 겸할 수 있을 듯 하다.
외부에서 느껴지는 그대로 아담한 공간을 지닌 실내다. 가정집을 개조한 소형 식당이 요즘 트랜드라면 트랜드이다. 그러나 매장안은 여성들이 카메라를 본능적으로 꺼내들게 만들 정도로 센스만점이다.
HONEST6T의 의미는 ‘정직한 6개의 테이블’이다. 그런데 테이블은 5개뿐이다. 추측컨대, 한테이블은 오너쉐프가 음식을 만드는 조리테이블일 것으로 추측해본다. 정직함의 결정체인 조리테이블에서는 소스, 드레싱, 치즈 등을 직접만든다 한다.
퓨전레스토랑을 지향하는 HONEST6T의 메뉴판을 정독한다. 직접 찍은 메뉴사진을 붙여놓고 손글씨로 메뉴판을 직접 만들었다.
샐러드, 파스타, 피자, 리소토처럼 자주 만나봤던 메뉴들을 특색있는 재료들로 재해석한 것은 물론이고, 동남아느낌 물씬 나는 향신료 스튜와 ‘뇨끼’라는 색다른 메뉴도 만나볼 수 있다. 메뉴판에 남겨둔 공간에 채워질 새로운메뉴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쉽게 넘길 수 있는 물하나도 신경썼다. 깨끗함의 상징이었던 정수기물로 못 믿을 세상. TV 광고속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미네랄 워터를 한병 쾌척한다.
향긋한 마늘바게트나 꿀에 찍어먹는 식전빵이 에피타이저의 전유물이였는데, 이제부터는 나초로 대동단결해야할 판이다.
나초에 토마토, 양파, 파프리카를 같은 크기로 썰어 올린 다음 샤워크림을 올려내 바삭바삭한 식감과 함께 상큼함이 매력이다. 에피타이저로 그만이다.
양식의 느끼함을 싹~ 잡아줄 양배추 피클도 적당량 제공된다. 신맛이 강하지 않고 깔끔하게 입안을 개운하게 만들어 주는 맛이라, 맛있다. 그런데 음식을 먹다보니 그리 느끼하지 않아 처음 맛본 것이 피클을 먹은 전부다.
HONEST6T에서 첫 번째 만나볼 메뉴는 방콕마미미트볼스튜(15,000원)다. 방콕이 메뉴명에 들어가니 벌써부터 향신료 느낌이 물씬 난다. 그러나 음식을 마주했을 때는 향이 거의 없다. 거기에 흑미밥을 한그릇도 내어준다.
한식요리처럼 떠먹는 국물요리가 없는 양식에서는 거의 유일무이한 국물요리가 스튜다. 어렸을적 경양식집에서 먹었던 야채비프스튜에 비해 고기를 함께 끓여 내지 않아서 확실히 묽다.
기본적으로 토마토소스에 덩어리채 넣은 치즈가 어우러져 로제소스 같은 빛깔이다. 거기에 직접 만들었다는 미트볼과 갖은 채소들이 큼직한 크기를 자랑한다.
미트볼의 생명인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다. 살코기와 지방질이 적당한 밸런스를 유지하여 촉촉함도 있기 때문에 스튜의 양념이 고기사이로 잘 밴다.
국물의 첫 맛은 향신료 특유의 오묘한 맛이 있긴 하나, 토마토와 치즈가 적절하게 잡아주니 풍미를 살려준다. 살짝 매콤한 스튜 한 수저, 흑미밥 한 수저도 의외의 조합을 자랑한다.
두 번째 요리는 크림해산물뇨끼(16,000원). 뇨끼라는 음식은 상당수가 생소해할 요리인데, 이탈리아식 수제비다.
뇨끼와 새우, 조갯살, 홍합 같은 해산물을 크림 소스와 함께 끓였다. 방울토마토를 넣어 상큼함 한 스푼, 매콤한 맛 한스푼을 넣어 느끼할 법한 크림소스를 부담스럽지 않게 즐길 수 있다.
여러 해산물 사이에 어렵지 않게 뇨끼가 발견된다. [크림해산물뇨끼뿐아니라 미트볼스튜에도 뇨끼가 들어 있어 사진을 대체함] 이탈리아 수제비인 수제비는 감자를 이용해서 만들었는데, 모양은 마치 조랭이떡 같다.
떡이나 수제비 처럼 쫀득쫀득함일 것이란 예상과 달리 폭신하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식감이다. 치즈가 녹아든 국물에 정성껏 직접 만든 뇨끼를 함께 먹으면 동지팥죽을 먹듯이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간다.
세 번째는 파스타(14,000원)이다. 초록초록하게 보이는 것의 존재는 시금치다. 크림파스타에 몸에 좋은 시금치를 넣어 비주얼도 살리고 느끼함까지 잡아냈다.
시금치 특유 달착지근한 맛의 크림소스를 듬뿍 묻힌 쫄깃한 파스타면을 돌돌말아 거기에 베이컨하나 얹어 먹으면 여러 여성들을 사로잡을 맛이다. 실제로 HONEST6T에서 인기가 높은 메뉴다.
HONEST6T의 마지막은 리조토로 장식했다. 이름이 다소 어렵다. 레드와인 소꼬리스튜와 보리크림리조토(17,000원).
손님상에 오기전에야 가스불을 끄는 듯하다. 양철냄비에 가득 담은 리조토가 보글보글 끓면서 어서 먹어주라고 소리없는 아우성을 치는듯 하다.
레드와인소스에 자박자박하게 쪄낸 호주산 소꼬리를 크림리조토와 함께 곁들여 먹는 음식이다. 밥도 특색있게 보리쌀을 가미하여 식감과 맛,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5개 가량 들어있는 큼지막한 소꼬리를 접시에 올려 준비된 포크와 나이프로 열심히 해체작업을 한다. 그 중 큼지막한 살점을 집어 입에 넣어본다.
매럭넘치는 단짠(단맛과 짠맛이 동시에 나는 맛)소스와 부드러운 살코기가 어우러진다. 한식의 소꼬리찜을 소꼬리 스튜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개명했을 뿐이다.
모양새는 빠지지만 이 리조또는 이렇게 먹는 것을 추천한다. 살코기와 양념을 크림리조또와 한데 비벼 먹어야 한다. 양념이 많으면 갈비찜에 밥을 말아먹는 한식이고 양념이 적으면 양식느낌 그대로이다.
느끼함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느끼한 음식을 싫어할 우리네 아버지들도 싹싹 긁어 먹을 것이다. 아 보고있자니 다시금 생각난다.
런치이벤트를 잘 활용하면 음료 값은 굳힐 수 있다. 11:30 ~ 14:00까지 1메뉴당 1잔씩 탄산음료 또는 아메리카노를 제공해준다.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전달하는 일이 쉬운일은 아니다. 집 밥을 하루에 한 끼도 먹기 어려운 세상, 바깥 음식은 위험수위에 오른 지 오래인 이 시대에 엄마들이 못하는 일을 대신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 마음이 든든해진다.
이기적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처럼 1인 쉐프가 소화할 수 있는 적정 테이블갯수만 유지해서 꾸준하게 지금같은 정직함을 유지했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