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의 제주도 바닷가 앞에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고 나니 비로소 휴가임을 느낀다. 다음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식당가에 도착한다. 거기에는 고기국수집이 떡하니 우릴 반긴다. 꿀꺽.....!
이내 축축함을 느끼며 정신을 차린다. 작년에 방문한 제주도를 꿈에서 회상한 것 아닌가. 당장에라도 제주도를 방문하고 싶지만, 주머니 사정이 따라주지 않는다. ‘아, 멀리 가지 않고 제주도 음식을 즐길 수 없을까?’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붓에 숨겨서 들어오신 문익점 선생처럼 고기국수를 광주로 가져온 이가 있으니. 제주도 맛을 보기 위해서는 동명동까지만 가면 된다.
야자(?)나무와 나무 창살, 서핑보드까지 제주도를 넘어 하와이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매장입구다. 새롭고 특색있는 식당을 찾아다니는 이들의 호평이 이미 자자한 '재주당'이다.
휴양지에 온 듯한 청량감을 주는 외관에서 눈에 띄는 독특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정주석과 정낭이다. 고구려 때부터 제주 특유의 생활풍습으로 집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3개 모두 기울어져있으면 “들어오세요.”, 1개만 꽂혀 있으면 “잠시부재중”, 모두 꽂혀 있으면 아무도 없음을 뜻한다. 오전 11시반부터 오후 10시까지는 3개 모두 기울어져 있을 것이다.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브레이크타임)
외관에 비해 실내는 썩 크지 않다. 20석 정도의 아담한 공간이다. 12시를 넘긴 시간에 도착했더니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매장 밖에서 5분을 대기 후 입장할 수 있었다.
재주당은 모든 손님이 둘러 앉은 Bar형식의 테이블과 생선을 그대로 본떠 만든 커다란 조명이 인테리어의 핵심이다. 얼핏보면 일식집 스타일이다.
돔베? 올랭이? 물꾸럭? 제주도방언이 메뉴판을 지배했지만 당황할 필요는 없다. 돔베고기는 도마 채로 나오는 보쌈, 올랭이와 물꾸럭은 오리·문어전골이다. 명칭만 익숙한 단어로 바꿨더니 음식에 대한 이해도가 어느 정도 생긴다.
심사숙고해서 선택한 고기국수(7,000원), 재주국수(7,500원), 흑돼지두루치기(12,000원), 감태주먹밥(4,500원)들로 제주도음식 한 상을 차렸다.
처음엔 무엇부터 먹어볼까 우왕좌왕했지만,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먼저 손에 닿은 건 고기국수.
고기국수는 말 그대로 돼지뼈와 고기로 낸 뽀얀 육수에 송송 썬 쪽파와 김가루를 얹었다. 펄펄 끓는 국물은 아니지만 국물 안에는 양질의 면발과 수육이 들어가 있다.
적당한 비율로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는 살과 비계. 삶아내고 뜨거운 국물에까지 들어가니 부드러울 수밖에 없다.
탱탱하게 잘 삶아진 면발과 수육 고기의 하모니. 지금 여기가 파라다이스다.
본래 고기국수는 우동면발만한 두께의 면발로 시작하였으나 지금은 제주도에서도 중면 굵기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재주당은 중면보다 더 얇은 면발을 사용한다. 노란빛깔이니 더 탱탱하고 쫀득한 느낌.
찰기 있는 면발을 한 웅큼 입안으로 밀어 넣고 나서 국물을 연거푸 들이킨다. 처음에는 지금까지 알던 국물요리들에 비해 밋밋했지만 먹다보니 고깃국물답게 진하고 구수하다. 근데 또 담백하기까지 한 육수다. 살짝 간간함도 가지고 있다.
돼지 특유의 냄새가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다진 마늘을 넣는다. 마늘이 국물에 은은하게 베어 맛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해준다. 고기국수에는 얼큰한 맛도 가미되면 딱 내스타일!
다음은 식당의 이름을 딴 재주국수. 그만큼 자신감이 엿보이는 메뉴.
고기국수와 다르게 해물이 들어간 국수다. 꽃게와 오징어, 홍합 그리고 문어 다리를 넣었다. 일단 비주얼은 해물 짬뽕 같은 느낌이 강하다.
문어 다리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낸 후 수저로 내용물을 휘저었다. 떠오르는 해산물들이 제법 실하다. 고기국수에서도 느꼈지만, 재주당 국수의 면발은 많은 편에 속한다. 위대한 면성애자들이라면 국수사리 추가(+1,000원)도 고민해봄직 하다.
재주국수의 국물 맛은 어떨까. 해물 특유의 깔끔한 맛에 칼칼한 맛이 일품이다. 고기국수가 돼지특유의 냄새가 부담스러운 사람이라면 재주국수가 더 매력적이다.
칼칼하긴 하되, 맵지 않아 누구든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맛이다. 비주얼로는 짬뽕이였는데 일본식라면인 '탄탄멘' 같은 맛이다. 고기국수와 재주국수 하나씩 시켜놓고 다른 매력의 두 가지 맛을 모두 즐기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다.
태생적으로 국수로는 왠지 배가 부르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곁들이 음식을 추가한다. 수육을 도마 채로 내준다는 돔베고기가 끌리긴 했으나, 고기국수 안에 들어간 고기 맛과 같을 것 같아 흑돼지두루치기를 주문했다.
두루치기도 제주식은 다르다. 빨간 고추장 양념이 아니라 짭조름한 간장양념으로 무장했다. 고기 얇게 썰어 단기간에 양념이 잘베이게 하는 것이 대부분은 주물럭 조리법인데 반해, 재주당은 좀 더 고기 육즙에 집중할수 있도록 깍둑(?) 썰어냈다.
양념 맛 때문에 첫맛은 짭쪼름한데, 씹을수록 고기육즙이 새어 나온다. 흑돼지라서 그런지 괜스레 더욱 쫀득한 기분이다.
간마늘이 들어간 특제소스를 찍어도 나쁘지 않지만, 그냥 그대로 먹는 것이 흑돼지의 풍미를 잘 느낄수 있다.
마지막은 밝은 초록빛의 감태주먹밥이다. 김가루로만 즐겨왔던 주먹밥의 화려한 변신. 감태는 제주도의 푸르름을 닮았고 거기에 건강에도 좋다.
쌉싸래하면서도 달달한 맛이 나는 감태에 참기름 코팅을 한 고소한 밥이 만나 향긋한 주먹밥을 맛볼 수 있다. 주먹밥 하나의 크기도 큼직한데 3개가 한 세트이니 어느새 배가 풍만해진다.
제주도를 동경하거나, 제주도가 그리울 때, 좋을 음식점이다. 동명동에서 제주도 음식을 맛보면서 잠시나마 기분을 내보자. 한 손에는 핸드폰 속 제주도 사진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