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의 어느 식당.
늦은 저녁시간, 영화관 관계자들이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한 야식을 요청한다. 식당의 사장 겸 주방장은 냉장고에 남겨진 갖은 채소를 아주 잘게 챱(주사위 모양 썰기)해서 샐러드로 대접했다. 그 후, 할리우드 전역에 이 샐러드가 입소문 나기 시작한다.
시대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배우들까지 즐기게 되면서 더욱 유명해진 이 샐러드는 곧 ‘브라운 더비’ 식당의 대표메뉴가 되었다. 그 이름이 바로 식당 사장(로버트 하워드 콥)의 이름을 딴 콥샐러드이다.
할리우드의 명물 콥샐러드! 샐러드 선택의 범위가 그리 넓지 않은 광주에서, 이 특별식을 만날 수 있는 곳을 소개하기 위해 오랜만에 동명동 나들이에 나섰다. 이미 맛집으로 정평이난 식당과 식당 사이에 있으니 찾아가기가 어렵지 않았다.
골목 입구에 들어서자 보이는 외관이 으리으리하다. 목재와 석재를 느낌 있게 사용한 것이 마치 네덜란드 대저택을 연상케 한다. 거기다 배고픈 점심에 방문했더니 동화 ‘헨델과 그레텔’에 나오는 빵과 초코과자로 만들어진 집을 마주한 느낌도 든다.
출입문을 넘어서면 바로 멋스러운 테라스공간을 만날 수 있다. 산들바람 불어오는 저녁에 은은한 조명 밑에서 커피 한 잔 하는 것도 낭만이겠다.
‘저녁에 다시금 방문해봐야지’ 생각을 하며 진짜 출입구를 들어서자 카운터와 바(?)를 겸하는 공간이 우릴 마주한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주문을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오픈한 지 한 달째 된 곳의 인기를 실감케 한다.
음료 메뉴판과 샌브런치 메뉴판 두 종류를 배치하고 있다. 메뉴판을 살펴보자.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밥보다 비싼 별다방 커피를 먹는 사람들을 된장남녀라 불렀던 때가 있었다. 이 곳의 가격은 그 별다방을 넘어선다. 거기다 1인 1메뉴가 원칙이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와 맛을 담고 있으리라 믿는다.
고질병인 선택장애 때문에 몇 번이고 메뉴판을 탐독한 이후에야 아메리카노(Ice), 아로니에디톡스 주스, 트리플베리 소다스쿼시를 주문했다. 물론 맛보러 온 콥샐러드(14,000원)도 빼놓지 않았다.
주문 후 좋은 명당을 찾아나섰다. 그러나 웬걸? 채광이 좋은 테이블에는 이미 손님들이 그득그득 했다.
모두 오픈 되어 있지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독립되지 않은 여러 공간이 통로를 중심으로 배치되어있다. 손님들의 왕래가 잦은 1층 공간과 비교적 적막한 2층 공간까지 완비되어 있다.
외관의 느낌을 그대로 담은 실내공간이 빈티지하면서도 멋스럽다. 은은한 조명 탓에 살짝 어두운 실내지만 오히려 진솔한 이야기를 더 나눌 수 있을 것만 같다.
10분이 채 되지 않아, 콥샐러드가 나왔다. (음료가 먼저 나오는 게 맞으나, 주문이 밀려있나 보다.) 정식명칭은 ‘사계절을 담은 아보카도 코브샐러드’다. 샐러드라고는 오직 케이준치킨샐러드가 전부였던 필자에게는 샐러드에 대한 견문을 넓혀줄 좋은 기회다.
콥샐러드의 시초는 냉장고에 있던 재료를 그럴싸하게 만들어 낸 것인데, 이 곳은 그럴싸함을 넘어 신선함이 묻어 나온다.
빨강(토마토), 초록(오이), 노랑(파프리카), 흰색(달걀), 연두(아포카도), 검정(올리브) 등 딱 봐도 8가지의 다른 색감이 어우러져있다. 채소들을 1.5cm 정도의 주사위모양처럼 일정한 크기로 챱했다.
1930년 할리우드에서부터 유명해진 콥샐러드의 주인공은 바로 아포카도라 한다. 비싼 가격 탓에 아포카도를 사용하지 않은 곳이 많다지만 ‘코발트’에서는 그때 그 주인공을 그대로 소환했다.
미네랄과 비타민이 풍부해 피부에 특히 좋은 아포카도는 견과류(호두맛과 비슷)의 향미를 지니고 있다. 식감은 삶은 단호박과 비슷한데 버터의 은근한 맛도 느낄 수 있다.
양식에 주로 쓰이는 베이컨 대신 한국식으로 삼겹살을 함께 곁들였다. 여기에 체다치즈를 채썬 듯 내어준다. 아무렴 샐러드라도 씹을거리와 풍미를 살려주는 역할의 재료가 있어줘야 한다. 삼겹살과 치즈, 그리고 채소들을 함께 먹으면 맛이 확~ 산다.
함께 곁들어 먹기 위한 드레싱은 마요네즈 맛이 강한데 산미가 있는 것으로 보아 요거트를 첨가 하지 않았을까 싶다. 샐러드 위에 드레싱을 충분히 뿌린 후 섞어 먹는 것이 본래의 방법이다.
하지만 드레싱의 칼로리를 무시 못하는 사람들은 적당히만 곁들여도 되고 가미하지 않은 채 그대로 즐겨도 나쁘지 않다. 콥샐러드는 부담스럽지 않은 브런치메뉴로 다년간 먹어온 육류를 잠시나마 해독해줄 수 있는 건강한 샐러드다.
샐러드와 함께 하기 좋은 음료가 아메리카노 외에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상큼함을 담당하는 에이드는 꼭 있기 마련인데, ‘코발트’는 스쿼시(Squash)가 당당히 메뉴에 등재되었다.
에이드는 과일 원액과 설탕에 물 또는 탄산수를 섞어 과일 맛을 내는 음료를 말한다. 그렇다면 스쿼시는 어떤 음료일까? 스쿼시는 과즙 혼합 음료와 달리 과육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에이드에 비해 약간 혼탁한 느낌이다.
4종류의 스쿼시 중 ‘트리플베리 소다스쿼시’를 주문했는데, 라즈베리, 크랜베리, 블루베리의 3가지의 베리가 함께 들어간 음료다. 적절한 비율이다. 어느 하나가 발란스를 해치지 않았고 상큼함과 청량감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과육의 씹는 재미도 함께한다.
이색적으로 디톡스주스도 판매한다. 독소를 해소해주는 디톡스주스는 건강한 재료만 모은 탓에 왠지 맛이 없을 것 같다. 그런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인지 베리를 넣어서 맛을 살렸다.
디톡스주스에 첨가 된 베리는 피부미용에 탁월한 최고의 베리로 손꼽히는 아로니아베리다. 묽게 맛만 낸 것이 아니라 과육으로 인해 되직한 음료다. 고기덕후였던 세종대왕의 후예들인 우리가 그동안 못 챙겨온 비타민과 영양소를 이 한 잔으로 수혈 받을 수 있다.
콥샐러드, 스쿼시, 디톡스주스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이 모든걸 한 날 한 시에 모두 섭렵하니 오늘만큼은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에 빙의한 느낌이다.
샐러드와 주스는 간식이나 에피타이저 격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뱃속 꽉 찬 한 끼 식사였다. 또한, 피부미용에 좋은 아로니아베리, 아포카도를 먹었으니 오늘만큼은 피부에서 꿀이 흘러내릴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