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캐스트
알알이 가득 찬 ‘보약’ 다슬기밥상
자연담아
일곡동
2016.05.10 조회수 1,022


더운 여름이면 시원한 냇가에 가곤 했다.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큰 바위 밑을 살짝 들어본다. 그 곳엔, 어김없이 다슬기가 4~5개쯤은 붙어 있었다. 그렇게 지천에 널린 다슬기를 별 품을 들이지 않고 채집해 끓여먹곤 했다.


다슬기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전라도에서는 대사리, 수도권은 다슬기, 충청도에서는 올갱이, 경상도 사람들은 고둥이로 불린다. 제각각인 이름만큼 팔도에서 인정받은 음식임에는 틀림없다.



다슬기는 청정 1급수에만 자란다. 허나 환경오염 탓인지, 간에 좋은 약 성분 덕분에 아버지들이 다 먹어버려서인지, 예전만큼 흔히 먹는 음식은 아니다. 프렌치레스토랑에서 달팽이는 먹어봤지만 다슬기는 못 먹어본 20대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 20~30대에게는 예스러운 전통요리를, 부모님 세대에게는 추억의 건강식을 소개하기 위해 일곡 근린공원 앞 다슬기요리 전문점을 찾았다.


수년간 다녀온 다슬기 집은 허름한 외관에 주인장이 여러 개의 빨간 대야를 놓고, 해감을 하며 반겨주는 곳들이었다. 그러나 ‘자연담아’는 달랐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상당히 깔끔한 외관이 눈에 띈다. 외벽의 색상과 재질의 ‘언발란스함’이 오히려 더 고급진 매력을 풍긴다.



매장 외부의 현대적(?) 느낌을 매장 내에서도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 거기에 목재테이블이 함께하니 자연을 머금은 느낌도 든다.


인테리어 분위기는 식당보다는 확실히 카페 공간 같은데, 북적북적한 걸 보니 밥집이 맞다. 벌써 주변 어머님들의 핫플레이스로 자리잡은 모양새다. 사모님들의 계모임과 생일파티가 동시간에 발생하는 곳이다.



‘퓨전 다슬기 요리전문점’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식당의 메뉴판이다. 다슬기를 넣은 수제비, 탕, 비빔밥 등의 보편적인 메뉴와 함께 보쌈정식, 샤브샤브, 백숙, 육회, 생고기 등 새로운 메뉴도 만나볼 수 있다.



다슬기는 동의보감에 기록되었을 만큼 다양한 효능을 가지고 있다. 시력을 보호하고, 이뇨작용에도 좋고, 간 기능을 회복시키며, 숙취해소에도 도움을 준다. 조그마한 알갱이의 능력이 어마어마하다.


아마 뼈해장국, 콩나물해장국이 보편화되기 전에는 다슬기해장국이 최고의 해장국이었을것이다. 숙취해소에 좋더라도 지나친 음주는 금물이다.



다양한 다슬기요리 중에서 우리의 간택을 받은 메뉴는 바로 ‘다슬기보쌈정식+수제비’다. 딱히 싫어하는 사람도 없을 것 같고 왠지 모를 푸짐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예상 적중. 메인요리인 보쌈과 양념게장, 돼지뽈살볶음, 그리고 여러 밑반찬들이 한상가득이다. 아직 다슬기수제비와 비빔그릇은 채 나오지도 않았다.



사실 이 곳은 음식제공시간이 꽤나 걸린다. 모든 음식이 다 준비된 다음에서야 내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상차림에 제공하는 샐러드를 먼저 주는 것이 백 번 좋을 것 같다. 샐러드는 양상추, 오렌지, 방물토마토가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검은깨 드레싱에 머스타드 소스를 곁들여 어울리지 않을 듯 했으나, 입가심으로 좋다.



건강밥상의 주인공인 보쌈이다. 잘 익힌 돼지고기를 보니 입 안의 침샘이 먼저 반응한다. 여타 수육보다는 얇게 썰어내 야들야들한 식감을 살린 데다 잡냄새도 없다. 보쌈전문점이 아닌데도 퀄리티가 이만하면 훌륭한 편이다.



친절하신 종업원의 말씀에 따라 명이나물 한 장 깔고, 돼지고기 수육을 집어 든다. 여기까진 일반적인 방법이다. 이제 수육 위에 다슬기 쌈장을 콕! 찍어 바른다. 향이 없는 돼지고기수육에 새콤한 명이나물 양념과 쌈장이 더해지니 참 좋다.



보쌈에는 보쌈김치가 맛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곳은 보쌈김치 대신 다슬기무침이 함께 나온다. 무침도 2가지나 된다. 새콤한 초무침에는 오이와 무로 아삭한 식감을 살리고 부추로 향까지 추가했다. 그간 아버님들의 술안주로 사랑받아온 초무침은 식사메뉴에 맞춰, 식초의 비율을 줄여 맛의 변화를 꾀했다.



다슬기의 본연의 맛을 더 느끼고 싶다면 초무침보다는 장무침이다. 일반인들에게 흔한 메뉴는 아니지만 맛은 오히려 초무침보다 더 낫다. 다슬기와 간장을 배합한 다슬기장에 부추, 고춧가루만 첨가하여 무쳤다.


간장이 들어가다 보니 짭쪼름한 맛 달착지근하면서 고소함도 있다. 먹다보니 장무침쪽이 줄어드는 속도가 빠르다.



무침은 간간한 느낌이 있지만 마냥 먹기 좋다. 더 괜찮은 맛을 찾는다면, 매뉴얼에 따라 무침 한 젓가락을 김에 올리고 다슬기장에서 다슬기 몇 개를 집어 쌈을 해먹으면 좋다. 구운 김이 간을 딱 잡아 줄 뿐 아니라 풍미까지 살려준다.



무침이나 볶음을 밥 위에 얹어 참기름 휘~두르고 비벼먹는 건 어느 혁신가가 고안해낸 방식일까? 다슬기무침을 만났으니 당당히 비빔그릇을 요구해본다. 취향껏 초무침이나 장무침 둘 중 하나에 집중해도 좋지만, 이왕이면 둘 다 섞어 한 데 비벼보자.



새콤하면서 짭짜름한 맛과 참기름의 고소함이 어우러지니 맛있는 비빔밥이다. 뭔가 국물이 있음 더 좋을 법하지만 우리에겐 수제비 국물이 있으니 그걸로 위안을 해보자.



정식 메뉴에는 더 큰 그릇에 담아져 나오는데 보쌈과 함께 나오는 세트메뉴에는 적당한 크기의 그릇에 나온다. 하지만 질과 양은 알차다.



밀가루 반죽이 하나하나 제각각이다. 손으로 투박하게 뜯어내야 더욱 쫄깃한 손반죽의 매력이 아닐까. 수제비의 국물은 푸르스름한 다슬기액이 곱게 우러났다. 고명으로는 부추와 감자, 애호박, 당근으로 장식한다.



국물에 고추를 넣어 칼칼한 맛도 느끼게 해준다. 간장과 다진 마늘 외에 특별한 양념을 하지 않아도 다슬기 향만으로도 시원하고 담백하다. 쫄깃한 반죽과 함께 알맹이들이 입안에서 톡톡 씹힌다. 다슬기 특유의 맛 때문에 뒷맛이 쌉싸래하지만 기분 나쁜 맛은 결코 아니다.



이런 맛있는 다슬기요리를 맛보기 위해서는 준비부터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것이 아니다. 해감, 세척, 해체작업 모두 하면 반나절은 족히 걸린다. 일일이 사람 손길이 닿아야 자그마한 보약 알맹이 하나를 얻을 수 있다. 이 노력 덕분에 다슬기가 더욱 맛있는 것 아닐까.

어렸을 적 이쑤시개로 다슬기 알맹이를 쏙 뽑아 먹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바로 지금이 추억과 영양을 동시에 챙길 수 있는 좋은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