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는 사실 화약 냄새 가득한 음식이다. 인도 식민지배 당시 영국 해군은 비프 스튜의 오래된 냄새를 없애는 데 카레가루를 이용했다. 이를 본 일본 해군은 새로운 짬밥 메뉴로 밥 위에 얹어먹는 카레 요리를 만들게 된다.
태평양전쟁 후, 이 일식 카레는 요코스카식으로 불리며 전역한 병사들에 의해 일본 전역으로 퍼졌다. 한국에 인도 '커리' 대신 일식 카레가 먼저 들어온 것도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카레는 어느 문화와도 쉽게 어울리는 음식이다. 한국에서도 인스턴트를 벗어나 고급진 요리로 한창 변신 중이다. 인도식 커리가 본격적으로 소개되고, 익숙한 일식 카레 역시 한국인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한다.
오늘 우리가 찾은 '카레팩토리'는 모습은 일식이나, 재료는 '친환경 우리 농산물'로 채웠다. 48시간 저온 숙성시키고, 33가지 허브와 새싹을 더해 카레의 진한 색과 맛도 더했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카레의 한국식 진화다.
이름 그대로 카레의 공장에 와 있는 듯, 내부에 칠해진 주 색상은 노란색이다. 따뜻한 노란빛이 식욕을 돋운다. 맛있는 카레를 상상하게 하고, 행복한 기대감을 더한다.
산뜻한 느낌의 메뉴판을 펼쳐보았다. 다양한 토핑을 선택할 수 있는 카레메뉴들이 급성 선택장애 증상을 재발케 한다. 정신이 아득해지나 줄을 놓아선 안 된다.
총 4단계의 매운맛까지 선택해야 하니 할 일이 많다. 심호흡 후 고른 오늘의 메뉴는 유부모찌우동, 돈까스카레 모빠렐라치즈, 양송이카레(왕새우토핑), 그리고 모듬까스 정식.
유부모찌우동(5,000원)은 미끈하게 잘빠진 면발 위에 김과 쑥갓이 놓이니 한 폭의 유채화 같다. 무엇보다 속이 꽉차 복주머니처럼 보이는 유부 주머니가 눈에 띈다. 한 입 베어 물면 예상 못한 재료들이 입안에서 맛난 존재감을 뽐내기 시작하는데, 바로 당면이다.
우동이 새롭고 즐겁다. 면은 조금 물렁물렁하지만 국물 맛은 진하다. 유기농 표고버섯과 다시마로 육수를 푹 고아낸 덕분이다.
돈까스카레 모짜렐라치즈(8,900원)은 갈색 카레의 호수에 노란 모짜렐라치즈가 물들었다. 그것이 알고 싶은 아재 덕분에 '모짜렐라'란 말만 들어도 괜히 치즈를 쭉~~ 늘여보게 된다. 돈가스에 카레를 잔뜩 묻혀 팔을 높이드니 역시, 천장까지 닿을 기세로 늘어지는 모양새가 모짜렐라 인증이다.
진한 카레맛에 치즈향이 케미를 이루니 구강 안쪽 꽉찬 스트라이크다. 기본으로 제공되는 맵기가 1단계인데, 치즈 덕분에 매운 단계를 2단계정도로 해봄직하다. 또 하나, '손님이 원할 때까지' 밥과 카레의 리필은 공짜다.
양송이카레에 새우튀김 또는 고로케를 토핑으로 추가(8,900원)할 수 있다. 같은 1단계 매운 맛이나 이 카레의 매운 맛은 모짜렐라치즈와는 사뭇 다르다. 처음 입에 넣었을 땐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느새 코로 알싸한, 기분 좋은 매운 기운이 올라온다.
메뉴판에 따르면 1단계는 겨우 신라면 정도의 매운 맛이라 하는데, 지존단계의 매운 맛은 아프리카 방송하면서 먹으면 모아진 별풍선으로 열기구를 띄워도 될 듯하다.
동봉된(?) 왕새우튀김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부드러운 튀김 안에 먹기 알맞은 굵기의 새우가 몸을 숨기고 있으니 요염하다. 양송이의 향과 포만감을 주는 새우튀김, 깊고 진한 카레가 손잡으니 자연스레 숟가락이 바닥을 긁게 된다.
모듬까스 정식(9,900원)을 정식으로 소개하려 한다. 돈가스와 새우튀김, 감자고로케와 치킨가라아게가 주요 멤버다. 1,000원을 추가하면 미니우동도 함께 내어준다.
갓 튀겨된 듯 상당한 기름을 보유하고 있는 돈가스의 맨살을 먼저 감상하고 크게 한 입 물었다. 바사삭!! 소리까지 맛있다. 모듬까스에 구성되어 있다고 허투루 하지 않았다. 이래뵈도 100% 국내산 돼지고기 生등심/안심을 사용한 품격있는 돈가스다.
감자고로케의 부드러움은 발군이다. 입에 넣으면 만족이라는 느낌만 남긴 채 실체는 사라져버린다.
맛있게 먹느라 정신없겠지만 한 편에 자리하고 있는 후식 코너의 스낵을 빼먹지 말자. 소박하지만 맛 좋은 스낵이 준비되어 있으니 먹을 만큼 집어 가볍게 즐기면 되겠다. 물론, 식전에도 좋다.
역사의 풍랑 속에서 카레는 문화와 문화 사이를 오갔다. 그렇게 표류하듯 도착한 문화 속에서 변신을 거듭해왔다. 오늘 찾은 카레팩토리는 카레의 내재적 변신을 꾀했다.
'정직한 농민 음식점'을 지향하며 친환경 우리 농산물로 속을 채운 것. 외형만을 바꾸는데 급급한 현실 속에서, 진실로 반가운 접근이다. 충돌하듯 도착한 카레를 정직으로 끌어 안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