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불난 금요일의 야심한 밤. 자취방에 홀로 남겨진 K는 101명의 그녀들을 보기 위해 TV를 틀었다. K는 흡족함을 느끼다가 곧 심한 허기를 느꼈다. 메뉴를 정하기도 전에 손가락 말초신경은 족발집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그렇게 사장님과의 통화는 이미 시작됐다. K는 그제야 고민을 시작했다. 족발도 먹고 싶고, 보쌈도 먹고 싶고, 매운족발도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때, K는 자기 무릎을 탁칠 묘안을 떠올렸다. '세트로 시키면 될 것 아닌가!?' 그렇게, 오늘 소개한 3종세트가 만들어졌다.
남구청 뒤편 식당들이 즐비한 골목 입구에 위치한 '퍼주네 국밥&족발', 이름 그대로 국밥 한사발 잔뜩 퍼줄 것 같은 외관이다. 아무렇게나 쓴 듯하지만 정겨운 느낌을 주도록 세심하게 기획된 간판의 글씨체가 인상적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넉넉한 인심의 아주머니가 우리를 반겨줄까?
하지만 예상과 달리, 젊은 사장님이 우렁찬 목소리로 우리를 맞이했다. 이 청년 사장님, 모임 중인 어머님들 사진 찍어주랴, 다른 테이블 주문 받으랴 바쁘셨다. 특별한 인테리어는 아니었지만, 활기찬 분위기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이 식당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세트메뉴 구성이다. 국밥을 주메뉴로 선택하든, 족발과 보쌈을 주메뉴로 간택하든 기호에 따라 다양한 구성을 고를 수 있다.
요즘의 트렌드인 '콜라보레이션'을 충실히 메뉴에 옮긴 센스에 탄복했다. 국밥+보쌈세트에도 눈이 갔지만, 우리의 선택은 '족발 X 매운족 X 보쌈'의 3종세트!!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갑자기 주문하지도 않은 곱창전골과 순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놀란 토끼눈을 하고 주변을 살펴보니 다른 테이블에도 이것들이 하나씩 놓여 있는 게 아닌가! 아마 세트메뉴에 기본으로 제공되는 기본찬인 듯했다.
고소한 들깨가루와 내장을 듬뿍 품은 곱창전골은 기대 이상으로 진했다. 테이블에 소주병 늘어나는 소리가 들린다. 순대의 찰기는 입안에서 착착 감기며 전골과 괜찮은 호흡을 보인다. 예상치 못한 서비스를 받은 느낌과 더불어 흡족한 첫 맛이다.
'퍼주네'에서 결성한 족보 형제 유닛의 첫 번째 멤버, 보쌈님이 화려하게 등장했다. 이분, 다소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인가 보다. 부추 아래 아름다운 자태를 숨기고 있다.
고기는 두껍지 않다. 대패삼겹살보다 조금 더 두꺼운 정도? 살과 비계가 젓가락질 한 번에 자연스레 분리된다. 거기에 부추 특유의 향이 느끼함을 날려주고 매콤한 김치가 맛을 더한다. 이 곳의 김치는 달콤함 그 자체의 보쌈김치가 아니라 익은 김치를 제공한다.
그 다음, 아까 나온 걸쭉한 국물 한 숟갈 쑤우읍 들이켜니 캬~ 아재 리액션이 시원하게 발사된다. 아, 부추의 정원 아래 다소곳이 숨어 있는 암뽕순대도 잊지 말자.
맛의 노래는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가운데, 이제 그룹의 센터와 메인보컬이 등장할 차례다. 눈을 뗄 수 없는 무대의상을 입은 듯 화려한 이 비주얼을 보시라.
무엇보다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깨와 파슬리, 견과류 같은 첨가물들이다. '젊은 감각'이 느껴진다. 이제 멤버 각자의 매력을 탐구해보자.
탱글탱글, 쫀득쫀득, 퍼주네 족발의 매력은 이 껍질에 있었다. 알맞게 밴 양념의 향과 함께 껍질의 탈력이 무엇보다 좋았다.
자연스레 내 얼굴만한 족뼈를 집어 들어 개걸스럽게 뼈와 살을 분리해나간다. 내 안의 피는 2만 년 전 이 곳 남구 주월동에서 수렵활동에 전념했던 조상의 본능을 기억하는 듯 했다.
매운족을 입에 넣고 음미한 첫 느낌은 '음... 닭강정 맛이 난다!'였다. 양념맛도 닭강정 맛이고 그 위에 뿌려진 견과류도 닭강정의 느낌을 더해주었다. 달달하면서도 매운 그 맛은 묘한 중독성이 있다.
하지만 닭강정에선 느낄 수 없는 매운족의 유니크한 강점이 있으니, 바로 콜라겐 덩어리 돼지껍질 되시겠다. 맛도 좋고 피부에도 좋으니, 아 좋다.
족보 형제의 화려한 비주얼에 가려 조명을 덜 받고 있는 존재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뒤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이 존재들을 잊어선 안 된다. 바로 막국수 말이다.
어찌나 탱탱한지 젓가락으로 집다가 끊기지 않으면 썸남썸녀 얼굴에 튕겨주기 딱 알맞다. 족발 위에, 보쌈 위에 한 타래씩 올려 같이 먹으면 그 조합이 일품이다.
이렇게 알찬 세트메뉴를 모두 정복하려면 4인은 있어야 한다. 3인이 함부로 덤볐다간 사장님께 남은 음식 포장해달라는 굴욕적인 부탁을 할 수밖에 없다.
하나의 꽃다발 같았던 '족발 X 매운족 X 보쌈' 3종 세트는 이미 나의 뱃속으로 거처를 옮겨진 후 포만감에 사르르 잠이 들었다. TV속의 101명의 그녀와 3종세트를 먹고 있는 꿈을 꾸었다. 일장춘몽이 아니길 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