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캐스트
광주에서 만난 뜻밖의 이탈리아
디탈리아(D`ITALIA)
신창동
2016.03.15 조회수 485



가정식(家庭食).

처음 가정식이란 말을 들었을 때, 이 단어가 본질적으로 품어야 할 재료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假定)하자면, 이런 식()이다.


먼저, 이 있어야 하고, 도마 소리가 들려야 한다. 둘째, 느려야 한다. 셋째, 재료는 아끼지 말아야 할지어다. 마지막으로, 낯섦에서 오는 설렘이 있으면 좋겠다.



디탈리아라는 이름과 이탈리아 가정식이라는 타이틀을 들었을 때 처음 찾아온 감정은 익숙하지만 낯선 설렘이었다. 피자와 파스타 같은 이탈리아 요리는 익숙하다. 그러나 가정식은 낯설다. 그 설렘이 발을 이끈다. 기대가 흥을 돋운다.


신창동 골목 어귀. 모퉁이를 향해 갈 때 커다란 이탈리아 국기가 나부끼는 모습이 보인다. 정갈하면서 세련됐다. 지나던 나그네는 발길을 멈추어 한참을 바라본다.




특이한 점이 있다. 주방과 홀이 한 공간에 있다.


가정식 요리에 관한 내 첫 번째 가정이 충족됐다. 앞선 손님들이 주문한 향이 홀을 감싼다. 흑과 백으로 정제된 내부 장식은 블로그에 자주 출몰하는 잘 꾸미고 사는 신혼집 같다. 결혼한 친구의 집들이에 초대된 기분이다. (물론 내 발로 찾아왔지만)



우리가 주문한 메뉴는 Scoglio(해산물스프), Crostini, Manzo 파스타, 그리고 Cazuela. 가정식이라 그런지 일반적인 이탈리안 레스토랑과는 다른 메뉴가 보인다. 메뉴를 기다리고 있으니 송송송 도마소리가 들려온다. 분명 오늘 아침 잠결에도 들었던 소리인데. 참 신기하게도 그 소리 하나로 낯설었던 이 공간이 편안하게 다가온다.



주문했던 요리들은 쉬이 찾아오지 않았다. 왜 이렇게 안 나올까, 두리번 거리다 메뉴를 소개하는 칠판 속 ‘Slow food’ 글씨가 보였다. 그리고 마음을 놓기로 했다. 느려야 한다는 것. 가정식에 관한 두 번째 가정으로 이미 내가 정한 것이었다.


드디어 빵으로만 사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들이 임하기 시작했다. 식전빵은 조금 딱딱하며 달지도, 짜지도 않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집에서 먹는 음식은 으레 이런 법이다. 그리고 염분이 낮은 이 심심한 빵은 뒤이어 나오는 요리 속에서 탁월한 존재 가치를 발휘한다.


< Scoglio(해산물스프) 7,000원 >


Scoglio는 암초, 바닷속 암초에 서식하는 해산물을 총칭하는 말이라 한다. 전채요리-메인요리-디저트로 이어지는 유럽사람들의 한 끼 식사에서 스콜리오는 전채요리로 삼기에 딱 알맞다.


새콤한 처음 뒤에 찾아오는 조개 특유의 향이 끝을 간지럽히고, 무심한 듯 시크하게 흩뿌려진 보리밥알이 먹는 재미를 더한다. 익숙하지 않은 맛이다. 지루했던 목구멍에 새로운 흥분을 부여한다.


< Crostini(크로스티니) 13,000원 >


‘Crostini(크로스티니)’는 이탈리아어로 작은 토스트란 뜻이다. 오븐에 구운 조그만 빵 위에 토마토, 리코타치즈, 버섯 등을 올리고, 값비싼 올리브유를 슬쩍 흘린 뒤 먹는다. 카나페와 비슷하다.



아낌없는 재료의 비주얼에서 충분히 예상이 되듯 아주 상큼하고 깊은 맛이난다. 재료를 아끼지말아야 한다는, 가정식에 대한 내 세 번째 가정이 맞아떨어졌다.


< Cazuela(카슈엘라) 13,500원 >


카슈엘라는 작은 냄비라는 뜻 그대로 조그만 냄비 속에 새우와 관자, 버섯 등의 재료가 잔뜩 들어있다. 나는 순댓국 먹던 습성을 버리지 못한 채 국물로 보이는 냄비 속 액체를 숟가락으로 가득 떠 입에 넣었다. 그리고 곧 그게 무식한 행위였음을 깨달았다. 냄비 속을 채운 액체는 올리브유다. 빵에 마늘향이 밴 올리브유를 적시고, 새우 같은 재료들을 올려 먹는다.



작은 냄비속 작은 바다를 모두 섭취했다면, 셰프에게 면 추가(+5,000원)를 외쳐보자. 두말 없이 냄비를 챙겨 간 셰프는 곧이어 남은 올리브유로 멋진 알리오올리오 스파게티를 만들어 대령한다. 도도하게 튕기는 쫄깃한 면발이 환상적이다. 기름에 빠졌어도 담백한 기품은 맛의 절제를 지킨다.


< Manzo Pasta(만조파스타) 14,000원 >



분명 크림파스타다. 전날 술을 진탕 마셨다면 절대 상상도 해선 안 될 존재다. 그럼에도 아주 맛있게 먹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적당한 간과 진한 크림향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오동통한 스테이크와 버섯이 부드럽게 혀 위에서 춤을 춘다. 귀한 손님을 위해 정성스레 준비한 주인의 마음이 느껴지는 맛이다.



가정식의 이름으로 집밥을 표방하는 식당은 많다. 그러나 가정식이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제대로 지키는 곳은 많지 않다. 느리지만 정성이 느껴지는 곳. 낯선 설렘 속에서 편안한 흥분을 느낄 수 있는 공간. 디탈리아는 가정식에 대한 까다로운 가정들을 모두 지켰다. 그래서, 가정식의 옳은 명제가 되었다.


MASTER가 만들면 뭐가 달라도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