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영역으로만 생각되었던 많은 일이 어느새 D.I.Y(Do-It-Yourself, 가정용품이나 가구 등을 직접 제작하거나 수리하는 행태)로 많이 전이되었다. 인테리어 처럼 협의적인 의미로 쓰였지만, 넓게 보면 요리도 이에 해당할 것이다.
평생 해본 요리가 라면 끓이기가 전부였던 이 시대의 가장들에게도 주방에서 칼을 잡게 하는 것이 요즘 케이블 TV의 Cook방의 매력이다.
방송에서 맛깔스럽게 만들어진 요리레시피를 보고
도전한다. 전문가에 비해 어설프지만 보이는 비주얼도 비슷하면서 맛도 제법 있다. 그런데 이때,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요리를 흉내 내다 보니 자투리 재료들이 많이 남게 된다.
그래서 오늘은 자투리 재료로 훌륭하게 재탄생한 요리를 만나보려 한다.
[오늘 소개할 업체가
자투리나 잉여 재료를 사용한다는 건 분명 아니다. 유래가 자투리 재료를 활용할 방법을 찾다가 탄생한
요리이니 참고 바란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곳은 동명동 푸른길공원 인근에 자리 잡은 한옥카페 36.5이다. 양옥집 사이로 검은 기와지붕과 조그마한 마당이 눈길이 가는 곳이다. 꽃 피는 봄이 오면 봄바람 쐬면서 즐기기 좋은 테라스를 가지고 있으며, 그 테라스 가장자리에는 골든리트리버 한 마리가 꼬리를 격하게 흔들고 있다.
또, 테라스에는 하얀 스크린이 걸려 있다. 저녁이 되면 건물 벽에 설치된
빔프로젝터를 통해 영화를 상영한다 한다. (영화상영 : 월, 수, 금 19:00~)
매장에 들어서면 또 색다르다. 한옥의
기초 구조물인 나무기둥은 그대로 살리고 나무로 만든 주방 등 고풍스러운 느낌을 준다. 오래된 카메라와
무전기, 전화기 등으로 옛 소품을 잘 활용하고 있으며, 재봉틀을
테이블로 변신 시킨 점 재밌다. 나무의자, 가죽의자, 페브릭의자 등 서로 다른 재질의 의자도 절묘하게 잘 배치했다.
왠지 한옥으로 만들어진
카페에는 청명한 가야금 소리와 한지로 된 메뉴판이 어울릴지 모르나, 80, 90년대 가요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최신 태블릿PC에서 메뉴판을 보여준다.
메뉴판을 수차례 스크롤 하여 음료 메뉴를 지나 식사 MENU에서 배를 채우기 좋을 만한 찹스테이크, 마약볶음밥, 고르곤졸라 치즈파스타 3가지를 골라 주문했다.
국내산 한우 안심과 양송이버섯, 브로콜리를 함께 볶아 윤기와 풍미가 작렬하는 찹스테이크가 한옥카페의 메인요리이다. 고가의 소고기를 주재료로 요리해 먹고 남은 자투리 고기와 채소들을 모두 깍둑썰기(찹 : Chopped)한 후 볶아서 먹던 것이 유래이다.
찹스테이크는 강한 불에 재빨리 익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며, 신선한 재료와 맛있는 소스만 있다면 그리 복잡한 조리법을 필요하지 않아 집에서도 도전해볼 만한 음식이다.
일반적인 스테이크와 달리 썰어서 볶아내기 때문에 최초의 육즙 손실이
발생할 수 있지만, 채소와 소스를 함께 볶아내기 때문에 고기 자체에 채소 향이 배어들고 소스도 구석구석 배어들어 좀 더 알찬 맛이 난다.
부드럽게 살살 녹는 소고기 안심의 식감과 양송이버섯, 느타리버섯, 브로콜리, 양파, 파프리카의 채소, 시큼하지 않고 풍미 깊은 소스가 만났다. 찹스테이크는 눈으로 봐도 즐겁지만, 맛을 보면 더 즐거울 것이다. 찹~찹~ 고기를 씹는 소리도 난다. 내어주는 밥과 함께 먹어도 좋다.
자투리 재료로 재탄생한
요리가 서양식으로 찹스테이크가 대표적이라면 한국에서는 단연 볶음밥만 한 음식도 없다. 식거나 살짝 오래된
밥과 채소를 함께 볶는 볶음밥은 어느 자취생이든 간에 자신만의 레시피를 가지고 있어 맛없기가 더 어려운 요리다.
여기에 김치가 가미되면 더할 나위 없다.
새빨간 김치볶음밥에 반숙
달걀후라이를 올려낸 볶음밥의 이름은 마약볶음밥이다. 먹기 전에도 그 맛을 알기에 군침이 흐른다. 어떤 점에서 마약볶음밥이라 지칭하게 되었는지 먹어봐야 할 부분이다.
볶음밥의 포인트인 고슬고슬한 밥과 잘게 썬 김치, 베이컨이 함께했다. 색깔이 상당히 빨갛다. 김칫국물만으로
이 색깔을 맞췄다면 상당히 짠맛이지만 마약볶음밥에는 매콤한 소스를 넣어 색을 냈다. 특별한 소스의 정체는
아마 고추기름일 것이다. 살짝
매콤한 맛은 반숙 달걀후라이가 딱 잡아준다.
먹어보니 자신감 없이 마약으로 이름을 짓진 않았다. 먹는 내내 자꾸 당기는 맛에 수저를 놓을지 몰랐다. 그릇을 테이블에서
들어 일행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마지막 한 톨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가격에 비해 양이 상당히 아쉽긴
했다.
치즈 파스타는 자투리
음식으로 만들게 된 음식은 아니지만, 친구들과 와인 한잔 하려고 이쁘게 모양내고 남은 치즈를 사용해서
충분히 파스타를 만들 수 있으니 자투리 활용음식 인걸로 하자.
한옥카페에서 판매하는 크림파스타는 식용 가능한 푸른곰팡이가 들어
있는 고르곤졸라 치즈를 넣은 파스타다. 고르곤졸라 치즈는 우아한 외관을 가지고 있고 달콤하면서 강한
맛을 가지고 있어 섹시한 치즈라 불린다.
고르곤졸라 치즈 파스타는 얼마나 섹시할까. 하얀 크림에 보일 듯 말 듯하게 숨은 새우와 베이컨이 아름답다. 거기에 딱 맞게 삶아진 파스타를 보면 ‘구색 갖추기’
메뉴 구성은 아니란 느낌이 들었다. 다만 일반적인 까르보나라에 비해 진한 크림의 맛이 다소 느끼하면서
치즈 고유의 누린 맛이 강해 느끼한 요리 마니아 층엔 확실히 사랑받을 수 있다.
포크질과 숟가락질을 경쟁적으로
하다 보니 금세 모든 음식을 비웠다.
60대의 풍경을 가지고 있는 한옥에서 80, 90년대의 소품과 음악을 들으며 세련되고 현대적인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점은 상당히 색다른 경험이었다. 마치 근대 박물관처럼 여러 세대가 공존하고 있는 공간이다. 이색
데이트 장소로도 좋지만 그만큼 부모님들과 함께하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람의 체온(36.5℃)을 따서 만든 식당 이름처럼 꾸준히 마음이 따뜻해지는 공간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한옥카페 36.5에서 봄을 맞아보는 것은 어떠한가. 상상만으로 즐겁지 아니한가.